제목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니라 No 4034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59
[ 날짜 :   2021-12-15 오전 8:30:41 ]
2021. 12. 15. 요11:1-4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니라

1, 주님은 본문의 내용,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통하여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신 말씀은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현실이 하나님에게는 구원과 능력을 드러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심으로 그 앞에는 어둠이 있을 수 없고 언제나 소망만 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제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 본문은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한 가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가정이 얼마나 주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었는지 본문은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다. 가족 중 한 사람인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기던 자였고, 가족들 가운데 또 다른 사람들인 마르다와 나사로도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던 자였다(11:5). 이 가정에 불행한 일이 생겼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된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마르다와 마리아도 시련 중에서 제일 먼저 주님을 생각했다. 주님이야말로 시련 중에 있는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보내어 주님께 나사로가 병으로 인하여 위급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속히 오셔서 치유해 주시기를 청했다.

주님은 나사로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틀을 더 마무르신 후 제자들과 함께 나사로의 집을 향하셨다. 주님께서 그들의 집에 이르렀을 때 나사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때였다. 주님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아시고 “내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11)”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사로가 나은 줄 알았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무덤에 묻힌 지 사흘이나 되었다. 마르다는 주님을 맞이하며 오라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21)”라고 말했다. 이 말은 주님께서 나사로의 소식을 듣고 즉시 오셨더라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여기 인간의 필요와 하나님의 시간 사이에 긴장이 있다. 즉 마르다에게 나사로를 살릴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그가 죽기 전까지였다. 이와 같은 시간을 “지금”이라는 말로 표현한다면 마르다에게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로 주어진 지금 긴급하게 요청되었던 것은 주님께서 그곳에 오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시간에 그곳에 오지 않으셨다. 이로 인하여 마르다는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인간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때에도 주님 안에는 언제나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즉 주님은 인간의 “지금”을 언제나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마르다에게 “지금”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아 그의 소망이었던 나사로가 죽었고 또한 이미 사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곳에서도 주님은 그를 다시 살리실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에게 지금은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시간으로 작용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인간의 지금을 초월하여 역사하신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지금과 하나님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다는 주님께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오시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말하며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11:22)”라고 함으로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믿음의 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의 말을 믿음으로 받으시고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마르다의 믿음에 가장 큰 도전이 되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하였고 주님은 그의 말에 대하여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마르다가 스스로 고백한 것을 믿는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날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했다. 마르다는 이런 고백을 하지 못했다. 그는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11:24)”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마르다는 부활의 때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실 것은 믿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그와 같은 일을 행하실 것을 믿지 못했다. 연약한 믿음은 이처럼 현재 요청되는 믿음에 응답하지 못하고 그 응답을 미래의 어느 날로 미룬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믿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실제로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므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지금 이곳에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도록 하셨다. 주님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라고 말씀하심으로 지금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은 미래의 어느 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말씀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동일한 사실을 주님과 마리아의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11:28-37). 주님은 마리아를 불렀다. 마리아도 마르다처럼 주님을 뵈었을 때 나사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32)”라고 말했다. 주님은 그를 데리고 나사로가 묻힌 무덤에 이르러 무덤 문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마리아는 주님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11:39)”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주님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인신줄 내가 믿나이다(11:27)”라고 고백했지만 “지금 여기에서” 고백한대로 주님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주님은 마리아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 무덤을 향하여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다. 주님은 그를 풀어주심으로 다니게 하셨다. 즉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다.

주님께서 본문의 내용을 통해 모든 세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신 말씀은 사람들에게는 절망적인 현실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모든 현실이 소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주께서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은혜의 기회를 주심으로 그 기회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세워 가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허락해 주신 은혜의 기회를 기회를 통하여 가르쳐 주시는 것을 깨닫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게 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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