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수요기도회 말씀 공유합니다. No 4016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29
[ 날짜 :   2021-10-13 오후 2:43:39 ]
2021. 10. 13. 요7:1-9.
분별과 기회

1. 주님은 신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주님의 공적 사역을 살펴볼 때 주님은 자신을 반대하는 곳을 피하셨고 환영하는 곳을 찾아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다. 주님은 공적 사역 가간 중 대부분을 갈릴리에서 보내시고 오히려 예루살렘에서는 제한적으로 계신 것도 이와 같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였다. 즉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피하여 갈릴리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7:1).

2. 본문의 내용이다. 초막절이 가까웠을 때, 형제들이 주님께 와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당당하게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주님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본문은 형제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5)” 즉 그들은 주님의 메시야 되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주님은 형제들의 말에 대하여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7:6)”라고 말씀하시므로 형제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리고 예루살렘의 모습이 어떠한지 밝히 보여 주셨다. 형제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고 또한 당시 예루살렘도 세속화 된 도시였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세상에 속한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주님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지라도 그곳에서 환영을 받을 수 없으셨다. 그래서 주님은 형제들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7:8)”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 “때”에 대하여 월리암 바클레이는 이렇게 주석하였다. 『예수께서는 종종 그의 때에 혹은 그의 시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전혀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말을 “유일한 때”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때”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요2:4, 7:30, 8:20, 12:27) 호라(ωρα)를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예정된 하나님의 시간(the destined hour of God)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때나 시간은 가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논쟁이나 변경 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무엇을 결정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때”는 호라가 아니고 카이로스(καιροσ)다. 이 말은 독특하게 기회(opportunity)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일을 하기에 최선의 시간, 가장 적절한 기회를 의미한다. 이것은 환경이 가장 적절하게 된 계기를 의미하고 우리가 종종 소위 말하는 심리학적 계기를 의미하며 기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포착하여야 하는 그 순간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정된 하나님의 시간이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보다 훨씬 더 단순한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다. 즉 그 때는 그가 기다리고 있는 기회를 줄만한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즉 주님의 말씀은 “만일 내가 바로 지금 너희와 함께 올라가면 내가 바라는 기회는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시간은 적절하지 못하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주님은 명절 중간이 될 때까지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을 지연시키신 것이다(바클레이, 요한복음 주석)』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동일한 일일지라도 때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때를 분별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지혜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때를 분별하여 그 때에 합당한 일을 하였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주님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을 반대하는 곳을 피하시고 수용적인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선하셨다. 또한 주님은 준비된 곳일지라도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인지” 물으시며 사역의 효과를 극대화 시시키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이야말로 진정 “성육신” 하신 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님은 만물을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셨지만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주님은 어떤 경우도 신적 권능으로 세상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거절하고 반대할 때, 또는 준비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들이 준비될 때까지 오래 참으심으로 기다리셨다. 만일 주님께서 신적 권능을 가지고 세상을 강요하셨다면 세상은 주님을 구주로 알기보다는 세상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권세자로 알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성육신만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되실 수 있었다.

주님의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된다. 만일 우리가 믿음만을 내세우고 모든 일을 무모하게 시도하려 한다면 이것은 성육신하신 주님을 본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힘에 의지하여 행하는 일일 것이고 또한 지혜의 부족함으로 비롯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특별히 중요한 일일수록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인가? 준비된 때인가?라고 묻고 그 물음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한다면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고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에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심으로 주께서 허락해 주신 기회를 알게 해 주시고 그 기회를 사게 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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