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수요기도회 말씀 공유합니다. No 4014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45
[ 날짜 :   2021-10-06 오전 7:06:14 ]
2021. 10. 6. 요6:22-71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1.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무리는 영적인 관심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육적인 일(빵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그러나 무리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에 속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 가지 비유와 가르침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육에 속한 자들이 어떻게 영에 속한 자들로 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2. 벳세다(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곳)에 머물고 있던 무리들은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다음 날도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려도 주님께서 그곳에 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갔다. 주님은 그들이 가버나움에 온 목적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6:26)” 그리고 이어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6:27)”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리가 표적을 보고 영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빵(세속적인 관심)에 대하여 집착하므로 이런 그들의 태도를 책망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런 안타까운 일들은 오늘의 우리들 가운데서도 반복되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 관심을 갖도록 주신 많은 말씀이 우리들에게 오히려 육신적인 관심을 부추기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실례를 들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대부분은 빌4:13절을 영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육적 욕망을 부추기는 것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주님이 무리에게 주신 말씀,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경우에 주신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은 무리가 주님께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6:28)” 그들이 이렇게 물은 것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6:27)”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의 표시였다. 주님은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6:29)”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메시야를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고말하고 있다.

무리는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또 다시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6:30)”라고 물었다. 무리가 이렇게 물은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야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 즉 “메시야는 자신의 메시야됨을 입증 해 줄 수 있는 표적을 행하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별히 무리는 주님께 스스로 메시야 되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오게 하는 표적을 행하라”고 요청했다. 주님은 무리의 요청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여기 주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에게 메시야가 행하실 일에 대하여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주신 비유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떡”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존을 위하여 내려주신 만나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매일 내려주신 만나로 인하여 사십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떡은 곧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주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심 것은 마치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생존할 수 있게 해 주셨던 것처럼,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메시야로 보내어 지신을 믿는 자마다 구원받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자 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사람들이 생존하였던 것처럼,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수 없는 자들은 주님을 메시야로 믿을 때만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생명의 떡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무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주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과 그의 부친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님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주님과 무리 사이의 단절은 영과 육이라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리들은 육신적인 눈과 귀로만 보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주님은 그들의 이해를 위하여 더 많은 가르침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영적인 일은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면 육적인 사람이 어떻게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인간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영적인 사람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할 때만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선입견을 버릴 수 있는 수단이다. 비록 유대인들이 주님을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로 생각하였을지라도 그를 통하여 일어나는 표적과 기사 등을 보고 깊이 생각했더라면 주님에 대한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오늘 본문(6:22-71)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다”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결코 주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고 귀가 열리게 해 주심으로 주의 말씀을 듣고 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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