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준비되지 못한 지도자 No 3456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41
[ 날짜 :   2022-06-26 오전 12:50:04 ]
2022. 6 26. 삼상8:1-22.
준비되지 못한 지도자

1.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 가운데 “선순환”이라는 말은 삶의 질과 관련된 말 가운데 어떤 말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함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삶의 구조를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선순환의 반어(反語)인 악순환은 우리의 삶을 황폐함으로 나가게 하는 구조를 표현하는 언어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우리의 삶의 구조를 선순환이 되게 하거나 또는 악순환이 되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때 개인과 공동체 더 나가서는 역사의 구조를 선순환적인 구조로부터 악순환적인 구조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준비되지 못한 자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준비되지 못한 사무엘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선순환적인 구조로부터 어떻게 악순환으로 전락되었는지 보게 될 것이다.

2. 1-3절의 말씀이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이 늙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지도자가 교체될 시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사무엘은 늙었을 때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았다. 여기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라는 말은 사무엘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본문은 누가 사무엘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에서 사사는 세습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무엘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것도 세습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사로 불린 것은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무엘은 매년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 그리고 라마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는데(7:16,17), 그가 늙어서 이와 같은 순회를 원활하게 할 수 없었을 때 아들들로 하여금 그곳들을 순회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자연스럽게 사사로서 인정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 여기 “아버지의 행위”란 사무엘이 부르심에 따라 산 삶을 말하며, 그것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선순환적인 구조로 세웠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익에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 이것은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불의한 사회구조로 변형시켰다는 것을 말한다. 즉 준비되지 못한 사무엘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짐으로 인하여 사무엘이 세운 선순환적인 사회구조가 악순환적인 구조로 변화 된 것이다. 그들이 변혁시킨 이 악순환적인 구조는 당대만을 황폐시킨 것이 아니고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구조 자체를 악순환적이 되게 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계속 고통을 가중시켰다.

다음 말씀은 사무엘의 아들들의 행위로 인하여 이스라엘 역사의 구조가 어떻게 악순환적인 구조로 변해갔는지 말해 준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8:4,5)” 사무엘의 아들들의 불의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이방나라들처럼 왕정으로 바뀌었는데, 왕정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간의 다스림으로 바꾸어 놓은 통치구조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찾아와서 그의 아들들의 불의함을 고발하며 자신들도 이방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기 원한다고 말했을 때 사무엘이 크게 근심한 것은 언급한 것처럼 그들의 요구는 통치구조의 변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변혁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그들의 존재 가치는 이방인들과의 구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고 왕의 통치를 받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무엘 외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고 왕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왕을 구한 것이다. 언급한 것처럼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구하는 것을 기뻐할 수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께 나가 그들이 구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물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물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8:7)” 이 말씀은 그들이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도 왕을 세우고 그의 통치를 받기 원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간의 다스림으로 바꾸는 통치구조의 변혁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필 때 이와 같은 통치구조의 변혁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황폐시켰는지 잘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가장 황폐하게 한 것은 왕정과 왕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울이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다윗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쫓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제사장이 한날 한곳에서 85명이 학살을 당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삼상22:18). 아합이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나봇이 포도원을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무고히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사사시대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사람들을 통하여 평화가 임하였을 것이다. 신정에서 왕정으로 통치 구조가 바꾸어짐으로 이스라엘이 얼마나 황폐해 졌는지 안다면, 이런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무엘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로 인하여 오는 해악에 대하여 교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준비되지 못한 자가 지도자가 될 때 오는 가장 큰 해악은 선순환적인 사회 구조를 악순환적인 구조로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반대로 준비된 사람이 지도자로 세워질 때 악순환적인 사회 구조를 선순환적인 사회 구조로 변혁시킨다. 다윗은 왕이 된 후 기럇여아람에 모셔 있던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왔고 또한 성전을 정화함으로 예루살렘을 성도(聖都)로 세웠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인간 중심의 통치를 하나님 중심의 통치로 구조를 변혁시킨 일이다. 놀라운 사실은 유다왕들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기 시대 번영을 가져왔던 왕들은 모두 왕이 된 후 무엇보다 먼저 성전을 정화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와 같은 행위는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의 구조 변혁이었다. 이처럼 사회 구조를 선순환적으로 변혁시킬 때 그 시대는 번영을 누렸고, 악순환적으로 변혁시킬 때 그 시대는 황폐해진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하여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무엇을 교훈 받기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본문을 통하여 준비된 지도자란 구조의 중요성을 아는 자라는 것을 깨닫기 원하신다.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 사이에 드러나는 차이는 바로 구조의 중요성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었다. 사무엘은 지도자로서 자신의 이익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이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일에 전심했고, 사무엘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복된 삶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들이 지도자로서 각각 행한 행위는 자신들의 삶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조를 세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무엘의 행위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선순환적인 구조가 되도록 하였고, 그의 아들들의 행위는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공동체를 악순환적인 구조가 되도록 하였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하여 어떻게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선순환적인 구조로 세울 수 있는지 깨닫기 원하신다. 그것은 부르심에 따라 사는 삶이다. 사무엘은 일생동안 온전한 마음으로 부르심에 따라 살았다. 여기 부르심에 따라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다는 의미다. 사무엘은 이처럼 자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그의 지도력 아래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선순환적인 구조로 세워졌다. 반면 그의 아들들은 부르심에 따라 살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일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삶을 의미한다. 그들의 이와 같은 삶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하였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 구조의 중요성을 알고 우리의 삶 전반을 선순환적인 구조로 세우는 일에 힘쓰기 원하다. 우리의 언어, 가정, 이웃과의 관계 등 삶의 전반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하여 살 때 우리와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는 선순환적인 구조로 세워질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주께서 본문을 통하여 주신 말씀에 따라 삶으로 우리와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선순환적인 구조로 세울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