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벧세메스로 가면(1) No 3452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41
[ 날짜 :   2022-06-05 오전 6:37:28 ]
2022. 6 5. 삼상6:1-21.
벧세메스로 가면(1)

1. 블레셋은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궤를 탈취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승리의 상징으로 알고 기뻐했지만, 그들이 여호와의 궤를 취하여 블레셋 땅으로 가지고 온 그 날부터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그들 가운데 재앙이 임하였다. 여호와의 궤가 머무는 곳마다 그곳에는 사망과 큰 고통이 따랐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 중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는 말은 블레셋이 일곱 달 동안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얼마나 큰 재난을 당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재난을 당한 후 비로소 그 궤는 자신들이 소유해서는 안 될 것으로 깨닫고 그것을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 보내기로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그 궤를 어떻게 본처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 지혜를 구했고. 그들의 권고에 따라 언약궤를 본처로 돌려보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의 본문을 통하여 삶의 여정에서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과 실패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 교훈을 받는다. 오늘은 전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 다음 주는 후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

2. 블레셋 사람들은 소유하지 말아야 할 것을 소유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7개월 동안 그들이 삶의 여정에서 당할 수 있는 재난 가운데 가장 큰 재난을 당했다. 5장 12절은 그들이 탈취한 여호와의 궤를 가지고 있는 동안 얼마나 큰 재난을 당했는지 말해 주고 있다.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그들이 이와 같은 재난을 당한 것은 소유하지 말아야 할 것을 소유함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내용의 본문을 통하여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교훈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서 세상에 사는 동안 소유해서는 안될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소유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축복보다는 재난을 당하게 된다.

만일 솔로몬이 이방여인들을 소유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우상숭배에 빠졌겠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겠는가? 만일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우상을 위한 전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불명예스런 이름인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림을 받았을까? 마찬가지로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았더라면 그와 그의 가정이 그토록 비참하게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한일서2장 15,16절의 말씀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만일 교회들이 세상에 속한 것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소유하려고 그것들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 밖에 버리움을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블레셋에게 여호와의 궤를 탈취하여 소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가? 실제로 그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여호와의 궤를 탈취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궤는 그들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한 그들은 결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부터 탈취하여 자신들의 소유로 삼았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가? 어쩌면 그들은 여호와의 궤를 탈취한 후 삶의 정상에 올라갔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여호와의 궤는 오히려 그들에게 재난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들이 소유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소유하고 있는 동안은 그들이 삶의 여정에서 당할 수 있는 재난 가운데 가장 큰 재난을 당한 것이다.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들 가운데 일어난 일들이 모든 시대에 반복하여 일어나고 있고 또한 오늘의 우리들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소유해서는 안 될 것을 소유하고 오히려 그것을 소유함으로 삶의 정상에 올라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그들 자신에게 재난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속한 자들에게까지 재난이 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소유해서는 안될 것을 소유했을 때 그것이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재난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히틀러가 권력을 소유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에게 그토록 큰 재난을 가져다주었을까? 동일한 물음은 오늘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재난을 가져다주고 있는 푸틴에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고 우리가 탐욕에 이끌려 소유해서는 안될 것을 소유함으로 재난을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족들이나 이웃들에게도 동일한 재난을 당하게 하고 있다.

그러면 모든 사람, 특별히 믿음의 사람으로서 소유해서는 안될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요한일서2장 15,16절에서 찾았다. 물론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다. 모든 사람,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에게 세상에 속한 것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한 재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세상에 속한 것들이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매력적이다. 육신의 정욕이란 육신이 원하는 것으로서 힘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더 큰 힘을 추구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 말하는 힘이란 권력과 재력과 지력을 말한다. 안목의 정욕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기에 매력적인 것들을 말할 것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 화려한 삶 등은 모두 안목의 정욕에 속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많이 소유할수록 이생의 자랑거리도 많아지고 이생의 자랑거리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세상에서 정상에 서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것들은 소유한 사람들에게 복된 삶을 가져다주기 보다는 오히려 재난을 가져다주고 있다. 실제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이끌려 살고 있는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가지고 있는 동안 재난을 당했던 것처럼 동일한 재난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매스컴을 통하여 그들이 당하고 있는 재난의 소식들을 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재난을 당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도 소유하지 말아야 할 것을 소유할 때 재난을 당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7개월 동안 계속되는 재난을 통하여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재난이 바로 자신들이 소유해서는 안 되는 여호와의 궤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궤를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주고자 한 것이다.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을 소유함으로 당하는 재난은 그것을 포기하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냄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 바울은 유대주의의 가치관에 따라 추구하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유한 자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7-9)” 바울의 고백이야말로 믿음의 사람으로서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을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낸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본래 세상에 있어야 할 것들이다. 만일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소유하는 것을 성공적인 삶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면 돌이키자. 주님의 말씀대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고(눅20:25),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어떤 것도 자랑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세상에 속한 것들과 결별하자.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믿음의 사람으로서 소유해서는 안될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그것들을 본래의 곳으로 되돌려 보낸 바울이 다른 어떤 믿음의 사람들보다 자유에 대하여 더 말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소유해서는 안될 것들을 소유함으로 당하는 재난들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포기하고 본래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으로서 우리가 소유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여일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신5:29,6:24), 다른 하나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요13:34), 또 다른 하나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레11:45). 우리가 이것들을 소유하고 있는한 영원히 복된 삶을 살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에게 분별의 지혜를 허락해 주심으로 믿음의 사람으로서 소유하지 말아야 할 것과 소유해야 할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주의 뜻에 따라 소유할 것을 소유함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