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고 No 3450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40
[ 날짜 :   2022-05-29 오전 8:28:45 ]
2022. 5. 29. 삼상5:1-12.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고

1. 사무엘상5장은 특별한 장이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결국은 패자가 된 경우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모든 시대 많은 사람들이 외적인 모습에서는 인생의 승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패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째서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패자로서 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하여 본문이 주고 있는 대답에 귀를 기울일 때 이와 같은 불행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했다. 이로 인하여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고 또한 승리를 위하여 실로로부터 모셔왔던 법궤까지 빼앗겼다. 물론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한 직접적인 원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했을 때 얻은 것은 승리가 아니었고 패배뿐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런 패배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의 상징이 되고 있는 법궤까지 빼앗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패배를 통하여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고자 하신 말씀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패배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살펴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언제나 패했다. 이것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반면 블레셋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지만 승리를 얻었다(삼상4:7,8).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승리의 원천으로 믿고 있던 법궤까지 빼앗았다. 그러므로 블레셋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얻은 승리는 완전한 승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완전한 승리라고 믿었던 이 승리가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완전한 패배에 이르게 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어째서 그들이 완전한 승리로 믿었던 그 승리가 그들을 패배자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얻은 승리로 인하여 축제를 열었다. 물론 그 축제는 그들의 신앙으로 표현 되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최대의 전리품인 법궤를 그들이 숭배하고 있는 다곤에게 감사의 제물로 바쳤는데. 이것은 그들의 신앙의 표현이었고, 그 신앙의 내용은 그들이 얻은 승리는 다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축제는 시작부터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5:2-4)” 여기 아스돗은 블레셋 사람들이 숭배하는 다곤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다곤의 위세(威勢)가 가장 큰 곳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곳에서 오히려 다곤으로 하여금 언약궤 앞에 엎드려지게 하심으로 다곤을 숭배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모습을 직접 보도록 하셨다. 물론 이렇게 하신 것은 다곤을 숭배하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계시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 사건을 우연으로 돌리고 엎드려진 다곤을 다시 세워놓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무지를 일깨워주시기 위하여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세워 놓은 날 밤에 또 다시 다곤의 목과 팔다리를 부러뜨리심으로 이와 같은 일들이 우연이 아니고 능하신 하나님께서 다곤을 굴복시키신 것임을 알려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만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듣고 다곤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을 경외했더라면 그들 가운데 일어났던 이와 같은 일들은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통하여 직접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5:6,7)” 여기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라는 말은 그들이 직접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목격하여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들이 본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자신들이 의지하고 있는 다곤을 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와 같은 결론 역시 하나님의 뜻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보고 돌이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려 하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재난만 피하려고 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확실한 증거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궤를 가드로 보내기로 했다. 이처럼 그들이 여호와의 궤를 가드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언약궤로 인하여 아스돗에 일어난 일들이 우연인지 아닌지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거나,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이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예물로 바쳤기 때문에 재앙이 임했다고 생각하고, 이런 일에 참여하지 않은 가드로 보내면 재앙이 멈출 것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빗나갔다. 언약궤를 가드로 옮긴 후 그곳에 큰 재앙이 임하여 언약궤를 더 이상 그곳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궤를 에글론에 보냈다. 이때 그들의 행동은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재난을 피하고자 한 것이지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궤가 에글론에 이르렀을 때 에글론 사람들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고 부르짖으며 궤를 에글론에 가져오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에글론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굴복한 것이다. 여기 아스돗과 가드와 에그론은 블레셋의 중요 도시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궤 앞에 굴복했다는 것은 블레셋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굴복했다는 의미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5:11-12)” 에글론 사람들은 블레셋의 모든 방백을 소집하고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했다. 그 결과 그들이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그 궤를 본처(이스라엘)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은 법궤는 그들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였지만 스스로 그 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는 것은 그들의 완전한 패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한 승리를 얻었지만 그 승리는 결국 그들로 하여금 완전한 패배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보다 법궤를 빼앗은 일로 인하여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전반부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패배의 원인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함으로부터 온 것임을 들었고 후반부에서 블레셋의 승리가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넘어지게 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패배를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승리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들을 넘어지게 한 것이 언제나 이와 같은 이유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하여 블리셋이 승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승리가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은 블레셋에게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실패한 대부분의 왕들이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넘어졌다. 어쩌면 이와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했던 왕들은 다윗과 여호사밧,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 정도였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여호사밧과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부(富)가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돌리고 교만에 빠졌을 때 넘어졌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을 재확인하게 하고, 삶의 여정에서 패했을 때는 하나님을 멀리했던 것으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승리했을 때는 그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믿음의 사람으로서 언제나 가져야 할 바른 태도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의 여정에서 승리를 얻을 때마다 “주께서 나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다”라고 고백하여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언제나 감사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바울은 언제나 “나의 나된 것은 은혜로 된 것이다”라는 고백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해 주시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로 인하여 삶의 여정에서 크고 작은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때마다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리의 것으로 삼음으로 넘어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