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복된 가정 No 3443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46
[ 날짜 :   2022-05-07 오후 9:10:08 ]
2022. 5. 1. 시128:1-6.
복된 가정

1. 이 시는 “지혜의 시”로 분류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정의 시” 또는 “결혼의 시”라고도 부른다. 왜냐하면 이 시의 내용이 하나님께 축복받은 가정의 모습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축복받은 가정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와 같은 가정으로 세우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

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축복받은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다. 계시의 말씀인 성경 특히 구약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란 신앙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가정을 말하고 있다. 이런 가정은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선민의식)과 안식일을 포함한 여러 절기들을 대대로 지키고 있는 가정을 말하고, 또한 믿음의 조상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로 삼았던 말씀을 대대로 최고의 권위로 삼고 있는 가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구약은 이런 신앙의 전통을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런 가정의 전통에서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운다. 가정을 이와 같은 신앙의 전통을 가진 가정으로 세우기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요청되는 것은 가정을 예배의 공동체로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별히 아브라함은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벧엘로 올라갔다.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삶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해 주어 그들의 삶의 여정에서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벧엘로 올라가도록 했다. 그들은 벧엘에 올라갔을 때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함을 받았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브라함이 세운 예배의 전통이 그의 후손들로 하여금 신앙을 이어가게 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목회자로서 그동안 배우고 확신한 것을 생각하며 서신의 가족들 모두에게 권고하는 것은 개인의 삶이나 가정을 예배 중심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임하는 은혜들로 인하여 믿음을 더하게 되고 또한 심령이 각성 되어 믿음의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 가정을 예배의 공동체로 세우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있다. 부모들이 가정을 예배의 공동체로 세울 때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예배드리는 것이 생활화되어 삶 가운데 예배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고 또한 예배드리는 것이 삶 가운데 무엇보다 우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이와 같은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자녀들은 곁길로 나가 급속히 세속화될 것이고, 그들을 다시 신앙 안으로 인도하는 것은 해산의 고통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세속화는 항상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부모가 세속화된 가정에서는 믿음의 자녀들이 고통을 받게 되고 자녀가 세속화 된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고통의 고리를 끊는 길이 바로 가정을 예배의 공동체로 세우는 것이다.

축복받은 가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유지하기 하여 요청되는 것들을 창조해 가는 창조적인 가정이다. 물론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란 경제적 필요와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질 등을 말한다. 특별히 우리가 본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축복받은 가정을 말할 때 노동과 그 열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128:2)” 여기 “수고”란 창조의 수단으로서 노동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축복이고 은혜의 수단이다. 우리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 아담이 행한 일(노동)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한 일은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창2:19). 그가 이름을 지을 때마다 그곳에는 존재하는 것들에게 의미가 부여(附與)되었다. 이것보다 더 창조적인 일이 있겠는가? 물론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노동이라는 은혜의 수단도 가치가 전도(顚倒)되어 노동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들 가운데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집중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변함없이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본문에서 축복받은 가정과 관련하여 노동과 그 열매를 말할 때 그것은 노동 자체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지만 또한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삶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노동을 통하여 창조적인 가정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가정이 배움의 장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창조적인 가정은 하나님의 뜻과 그 뜻에 따라 사는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배움의 장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적인 삶은 언제나 배움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된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족들이 함께 창조해 갈 때 복된 가정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여기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창조해 가야 하는 것들이란 경제적 필요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질 등을 말한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은혜의 수단을 허락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노동이다.

또한 축복받은 가정은 온 가족이 사랑 안에서 하모니를 이루는 가정이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128:3)” 여기 “네 식탁에 둘러 않은”이라는 말은 가족들이 함께할 때의 하모니를 의미할 것이다.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와 어린 감람나무와 같은 자녀들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 이것이 바로 하모니를 이룬 가정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이 하모니를 이루는 가정은 가족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빠진다면 행복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그가 있기 때문에 든든하고, 아름답고, 풍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가족들이 서로를 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섬길 때 하모니를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하모니를 이루도록 섬김이라는 은혜의 수단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할지라도 그곳에 서로에 대한 섬김이 있ㄷ면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다. 특별히 섬김 중의 최고의 섬김은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고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3절을 보면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말하고 있고, 자식들을 어린 감람나무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가정에서 가족들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섬김은 가족들의 관계를 선순환구조로 변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세워주기 때문에 서로 보다 더 온전함으로 세워지고 이런 일이 계속되기 때문에 이런 가정은 시간이 더해 갈수록 더욱 복된 가정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이와 가정으로 세워지기 원하신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가정에 대한 신학적 기초를 정립하고 그 위에 굳게 서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신 복된 가정이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족들이 함께 필요와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 가고, 그리고 서로 사랑함으로 하모니를 이루는 가정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가정을 세울 수 있는가? 우리의 가정을 믿음의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는 예배의 장으로 세울 때, 가족들이 삶의 의미와 가치와 질을 창조해 가기 위하여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배움의 장으로 세울 때, 그리고 서로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의 부족을 채워줌으로 함께 온전함에 이르는 섬김의 장으로 세울 때 이와 같이 복된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우리가 가정에 대한 이와 같은 신학적 기초위에 굳게 서 있다면 가정을 위하여 무엇을 하든지 결과적으로는 가정을 예배의 공동체, 배움의 공동체, 섬김의 공동체로 세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개인적인 삶이나 공동체의 삶에서 신학적 기초의 결여로 인하여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복된 삶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에 예속되어 살고 있다. 이로 인하여 믿음의 사람들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무가치한 자들이되어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최선의 길이라는 것ㅇ르 입증하는 일에 삶을 투자하자. 우리는 허락해 주신 삶을 무엇을 위하여 투자하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와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위하여 삶을 투자한다면 이 세상과 정욕이 무너지는 날 우리의 삶도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일에 투자한다면 우리는 영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게 해 주시고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회개함으로 다시 돌이키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고 있는 것들은 더욱 세워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가정을 주의 뜻에 따라 예배와 배움과 섬김의 공동체로 세워가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