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종이 듣겠나이다 No 3442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48
[ 날짜 :   2022-04-30 오후 9:12:48 ]
2022. 5. 1. 삼상3:.
종이 듣겠나이다

1. 모든 사람은 유한성으로부터 오는 오류나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언제나 두 가지 변화를 바라고 있다. 하나는 개인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사람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기 원한다는 것이고 또한 동일한 이유로 인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고 있는 사회 더 나아가 역사 자체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일들이 가능한 길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2. 개인의 삶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고 역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고 또한 그들을 통하여 역사도 새롭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듣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을 향하였고 이로 인하여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 되어 세속의 역사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기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집을 떠났다는 것은 개인적인 삶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전기를 맞이하였다는 것을 말해 주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와 같은 일을 가능하게 했다.

동일한 예를 모세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권력을 누리며 살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살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고, 또한 애굽에서 쫓겨나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목동으로 살 때도 삶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호랩산에서 불이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새롭게 살 수 있는 전기가 되었고 또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가 새롭게 변화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환경에 따라 수동적인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부터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됨으로부터 구원할 자로 살았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하여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모세로 하여금 이와 같은 일을 하게 한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바울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였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고 또한 계속 지식을 더해 갔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전통에 얽매어 살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자신과 역사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자들을 박해하는 자가 되었다. 러나 그는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극적으로 변화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박해자에서 사도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서 세계의 역사를 변화 시켜 놓았다. 그의 이와 같은 변화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한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변화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한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은 선지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말씀을 듣지 못했더라면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창조해 갈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은 물음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오늘의 우리의 모습처럼 변화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전지 전능 편재 영원하시고 선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말씀하시고 그 길을 보장해 주신다면 우리는 형통할 수밖에 없고 새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말씀을 든는 것 자체가 새로운 삶을 살고 역사를 변화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기드온처럼 두려움 가운데 살던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300명의 군사를 가지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미디안 군사와 싸우러 나갈 수 있는 담대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믿지 못하여 그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바로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애굽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사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고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놀라운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르심에 따라 성실한 삶을 살 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무엘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3절의 말씀이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3:2,3)” 본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엘리의 모습은 늙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직무에 충실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고, 사무엘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께 헌신된 나실인으로서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은 이처럼 엘리와 사무엘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 후,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은 “경외하는 자에게 임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 경외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사무엘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머니의 서원으로 인하여 나실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고 허락해 주신 환경에서 나실인으로서 성실히 살았다. 그의 이와 같은 삶이 바로 경외하는 삶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극적인 체험이나 신비한 것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믿음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는 살이고, 공적 예배를 통하여 공동체 문화를 신앙의 문화로 세우고 성도의 교통을 세워가는 삶이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고,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3:4,5)”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즉시 대답했다. 이것은 그가 항상 깨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물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는 영적으로 미숙한 자였기 때문에 자신을 부르는 자가 제사장 엘리인 줄 알고 엘리를 찾아갔다. 이런 일이 거듭되었을 때 엘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것으로 알고 그에게 또 다시 부르심이 있을 때에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이로 인하여 사무엘은 이스라엘 가운데 말씀이 희귀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사무엘의 삶은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말씀을 들을 후 사무엘이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역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안다면 말씀이 희귀할 때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절망적인 상태를 말한다. 만일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까지 그들의 삶은 계속 황폐해 갔을 것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고 또한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영적 각성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 부패의 고리를 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개인의 삶을 새롭게 살 수 있는 전기가 되고 역사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주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이로 인하여 우리 자신의 삶이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역사가 새롭게 창조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