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빛으로 오신 주님 No 3403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67
[ 날짜 :   2021-12-18 오후 8:57:08 ]
2021. 12. 19. 눅1:78,79.
빛으로 오신 주님

1. 주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여기 주님의 오심을 “빛”으로 묘사한 것은 주님의 오심에 대하여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 가운데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며 누구든지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

2.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습을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라는 말로 묘사하고 있고, 세상의 구주로 오신 주님을 “돋는 해”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 묘사된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하고 이와 같은 세상에 주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어째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은 세상을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 묘사했을까? 여기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라는 말은 생명을 소진시키거나 멸하는 것들을 묘사한 말로서 우리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절망과 좌절을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빛이 아니라면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사실은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대로 세상은 “어둠과 사망의 그늘”로 덮어 있는 곳이고 우리는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이라는 절대 절망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부언(附言)하면 모든 생명체는 빛이 없는 곳에서 잠시 동안은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더해 감에 따라 생명을 소진해 가다가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 죽음 자체가 우리에게는 절대 절망이다. 세상은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로 덮여 있는 곳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성경 모든 곳에서 말해 주고 있지만 특별히 전도서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1-6장).

전도서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 덮여 있는 세상을 여러 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숙고해 본다면 참으로 충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면 우리의 삶 역시 헛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수고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보다 더 복된 삶으로 세우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면 결국 우리가 수고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수고해도 우리의 삶의 가치를 더할 수 없고 복된 삶을 살 수 없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고 어둠과 죽음의 그들이고 절대 절망이다. 특별히 전도서 1장은 우리에게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고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수고를 통하여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도서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덮어 있는 세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소유를 더해도 복된 삶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유가 우리의 복된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가운데 지배적인 생각은 소유를 더할수록 더욱 행복해 질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소유에 있었다. 사도요한도 사람들로부터 동일한 사실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유욕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일2:15)” 여기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힘을 말한다. 물론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정욕”이란 소유욕을 말하는데 이 소유욕은 사람들의 실제의 삶에 언제나 재력, 권력, 지력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더욱 행복해지기 위하여 추구하고 있는 소유도 삶을 복되게 해 주지 못한다면 이것 역시 우리에게 절망적이다. 실제로 솔로몬은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였지만 그것들이 자신의 삶을 복되게 해 주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소유를 추구하며 사는 삶도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2장).

전도서는 우리 모두는 시간에 예속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있는 절망적인 세상의 모습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물론 여기 날 때와 죽은 때는 우리의 삶의 시작과 마지막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간들은 우리의 선택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온다. 이것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절망이 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수고는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죽음의 시간을 직면하고 있는 순간에 평생 이루고자 수고했던 일들이 성취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면 기뻐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의 삶이 시간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절망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전도서는 세상에 있는 모순이야 말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있는 절망적인 세상의 모습들 가운데 또 하나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세상에는 모순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길이 없다. 의로운 일을 행하는 자도 자기의 의로 인하여 칭찬받지 못하고, 부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도 그 부로 인하여 즐거움을 보장받지 못한다. 한 시대에 존중되던 것들이 다음 시대에는 비난거리가 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복된 삶을 살기 원하지만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길을 선택하여 가고 있다. 실례로서 모든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살 때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을 믿지만 사랑하며 살기 보다는 서로 미워하며 산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모순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순들이야 말로 우리에게 절망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숙고해 보면 절망이 아닐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절망들로부터 벗어날 능력도 없다. 이와 같은 현실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처럼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 덮여 있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장 말씀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여기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말은 “이기지 못하더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이렇게 번역한다면 본문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물러갔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즉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있던 세상이 빛으로 오신 주님으로 인하여 밝아졌다는 의미이다. 주님이 빛으로 오시기 전의 세상은 생명이 소진해가고 멸해 갈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곳이었지만 주님께서 빛으로 오신 후부터 세상은 생명으로 충만한 곳이 되었다.

그러면 주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복음서들 가운데 묘사된 주님의 모습을 볼 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복음서들은 주님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말하고 있다. 실제로 주님은 각색 질병들을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고. 자연을 다스리실 수 있는 능력과 귀신들을 굴복시키시고 음을 정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다. 주님에게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해 주실 수 있고, 우리의 소유를 복된 삶에 이르는 은혜의 수단이 되게 해 주실 수 있고, 우리에게 영원을 약속해 주실 수도 있고, 모든 모순을 극복하게 해 주실 수 있으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빛으로 오신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 그리고 세상에 있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가?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여기 “돋는 해”는 주님을 말하므로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했다“는 것은 주님께서 빛이 되셔서 우리를 비추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님은 항상 우리 가운데 치유자로 임하셨고, 죄를 사해 주시는 분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고, 능력을 더해 주시는 분으로 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이 비춰주시는 빛으로 나갈 때 우리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여기 우리가 그 분의 빛으로 나간다는 것은 신앙의 고백을 의미한다.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그 환경에 합당한 신앙의 고백으로 그 분 앞에 나가는 것이 바로 그 빛으로 나가는 길이다. 만일 우리가 질병 중에 있을 때 주는 치유의 주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질병을 그분의 손에 의탁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공중의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을 입히시는 주님이심을 고백하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간구할 수 있고, 장래에 대한 염려가 있을 때 주는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열쇠를 가지신 분이심을 고백하며, 우리의 장래를 인도해 주시기를 구할 때 우리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이다. 2021년 성탄절을 통하여 주님을 빛으로 고백하기 원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피할 수 없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부터 자유하기 원한다.

3. 함께 기도하자. 주는 빛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덮고 있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항상 그 빛 가운데 살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