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No 3401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56
[ 날짜 :   2021-12-11 오후 7:20:27 ]
2021. 12. 12. 삿20:1-48.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1.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기브아의 불량배들의 악행에 대한 레위인의 고발로 인하여 이스라엘 총회가 미스바에서 모였고, 총회가 불량배들을 징계하기도 한 결의에 대하여 베냐민 지파의 도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하여 양측에서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만일 이스라엘 총회가 좀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베냐민으로 하여금 불의를 멀리하도록 설득했더라면, 베냐민 지파가 지파 내에서 행한 불의를 인정하고 총회의 권고를 들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할 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지혜이며 용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지혜와 용기는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행으로부터 복된 삶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지혜와 용기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

2.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의 전쟁으로 인하여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망자 수는 이스라엘 총회가 사만 삼십 명이고, 베냐민 지파가 오만 명으로 양측의 사망자 총수는 구만 삼십 명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총회가 베냐민 온 성에 다니며 만나는 자마다 모두 죽였고 말하고 있는데 이때 죽임을 당한 수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 전쟁은 이방인과의 전쟁도 아니고 동족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었다는 것이고 또한 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전쟁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고 형제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켰더라면 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나는 만일 이스라엘 총회가 좀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베냐민으로 하여금 불의를 멀리하도록 설득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냐민 지파가 지파내에서 일어난 불의를 인정하고 이스라엘 총회의 권고를 들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라는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가 서로를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더라면 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전쟁으로 인하여 죽임당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내용의 본문을 통하여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도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전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이와 같은 전쟁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가 입게 되는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피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전쟁이 어째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와 같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어째서 일어나서는 안될 전쟁들이 일어나는가?” 여기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서 형제가 형제와 싸우는 동족상쟁을 말하고 또한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못한 전쟁을 말한다. 왜냐하면 형제는 사랑으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로서 싸워서는 안 되는 관계이기 때문이고. 또한 피할 수 있는 전쟁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비극적인 일들 가운데 하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본문을 중심으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는다면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불의를 용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의 논리에 따라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이유로든지 불의를 용납할 때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분명히 불의를 행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총회는 그들이 행한 악행은 이스라엘 가운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그들을 징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행한 악행에 대하여 말해 주고 그들을 총회에 내어 줌으로 징계하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같은 총회의 요청은 정당한 것이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가 총회의 권고에 따라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넘겨주었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총회의 권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총회와 싸우기로 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총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베냐민 지파는 그릇된 “지파 주의”로 인하여 자신들 가운데 허용해서는 안 될 불의를 허용했다. 이로 인하여 베냐민 지파는 스스로를 정화(淨化)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동족에게 큰 피해를 주었고, 자신도 넘어졌다. 언급한 것처럼 베냐민 지파가 “지파 주의”를 떠나서 자신들 가운데 있는 불의를 인정하고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에고 이 용기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준다고 말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완전한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스스로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의로운 길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약함과 불의를 인정하고 이로 인하여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만일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행한 자신의 불의함을 인정하고 자신에 대하여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이방인의 사도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은 물음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믿음의 조상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이며 또한 전쟁을 피하고 스스로를 세울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힘의 논리를 가지고 이웃을 대할 때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은 12-14절의 말씀이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20:12-14)” 본문은 이스라엘 총회가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을 보내어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행한 악행을 알리고 그들을 이스라엘 총회에 손에 넘겨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소식을 듣고 불량배들을 이스라엘 총회에 넘겨주기 보다는 오히려 총회와 싸우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각 성읍으로부터 기브아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기브아로 올라갔다.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어째서 그들은 총회의 권고를 듣지 않고 불의를 행한 기브아 사람들을 돕게 위하여 총회와 싸우고자 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지파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브아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베냐민 사람들이 그들을 보호하고자 이스라엘 총회와 전쟁을 택하였다는 것이 바로 지파주의이다. 즉 불의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속하였는지 아닌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지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째서 그들은 총회의 권고를 듣지 않고 불의를 행한 기브아 사람들을 돕게 위하여 총회와 싸우고자 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또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총회가 베냐민 지파에 대하여 강압적인 태도를 보임으로 그들의 반감을 산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총회는 한 지파가 가지고 있는 힘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총회는 베냐민 지파에 대하여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려는 태도보다는 결정 사항을 통보하고 그대로 행할 것을 강요했을 수도 있다. 동일한 일일지라도 협조를 구하는 것과 강요하는 것에 대한 반응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언제나 힘을 사용하는 곳에는 그 힘에 대한 반작용도 따른다. 그러므로 만일 총회가 베냐민 지파에 대하여 설득하거나 협조를 구하지 않고 통보하고 강요하였다면 여기에는 반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반감은 지파주의를 강화함으로 결국 총회의 권고를 듣기 보다는 그들과 싸우도록 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 총회도 “피할 수 있는 전쟁”을 피할 수 없게 한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전쟁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야 말로 전쟁의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길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고, 서로를 신뢰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전쟁의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길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베냐민 지파가 자기 지파 사람들이 행한 불의를 인정하고 이스라엘 총회의 권고를 들었더라면 구만명 이상의 생명을 살렸을 것이고 또한 이스라엘 총회가 베냐민의 사정을 듣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불의에서 떠나도록 기회를 주었더라면 동일하게 전쟁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전쟁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심으로 자신과 이웃 모두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든지 샬롬의 도구로 사용되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