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요한계시록22장 No 3114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831
[ 날짜 :   2019-02-23 오후 11:39:00 ]
요한계시록22장

22:1-5.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요한은 계속하여 거룩한 성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Alan F. Johnson은 21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거룩한 성은 성의 외부적 모습에 중심을 주었지만 22장은 내부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한이 묘사하고 있는 거룩한 성의 모습은 에덴동산의 모습과 같고(창2:4-17), 또한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거룩한 성의 모습과도 같다(겔47장). 요한은 이처럼 창세기와 에스겔서에서 본 것처럼 이 성의 모습에 대하여 특별히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였다. 하나는 이 성의 보좌로부터 수정과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강 주변에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물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을 상징한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 문지방 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큰 강을 이루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물이 흐르는 곳에 모든 생물들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은 강의 모습은 에덴동산에서도 불 수 있다. 에덴에 발원하여 동산 전체를 적시는 4개의 강(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은 에덴동산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했다. 실제로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 강 좌우에 많은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요한이 본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 좌우에도 많은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강물이 구원과 생명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특별히 이 나무들은 모두 열매를 맺는 나무들로서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의 잎사귀조차 약재료로 쓰였다. 여기 나무가 맺는 열매와 약재료가 되는 잎사귀는 생명의 충만함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이 생명의 근원을 생명수 강에서 찾을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생명수 강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생명의 원천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으로 충만한 곳이다. 이 생명으로 인하여 이 성에는 다시 저주가 없을 것이다.
요한은 생명 되신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이 성에서의 삶의 모습을 이와 같이 그리고 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22:3-5)” 이 성에는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이 성에 사는 자들은 세상에서처럼 믿음에 대하여 조금도 의혹을 갖지 않을 것이다. 여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하여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했었지만 이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취심이라” 이 말씀을 우리가 문자적으로 이해 할 수도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다시 밤이 없겠고”라는 말은 이 성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영적 침체와 같은 어둠, 불신앙과 같은 어둠이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의 빛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성도들은 신앙에 어떤 도전도 받지 않고 영원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
22:6-21. “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은 계시록의 결론에서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예언에 대한 신실성의 확증(22:6,7,16,18,19), 다른 하나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긴박성(22:7,12,20), 그리고 마지막은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와 성에 들어오라는 초대(22:11,12,15,17-19)이다(Alan F. Johnson). 이 예언의 말씀은 신실하다. 여기 “신실하다”는 것은 말씀하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요한은 예언의 말씀이 신실한 이유에 대하여 “선지자의 영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22;6). 즉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예언 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 말씀은 신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또한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민23:19).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신 모든 말씀의 신실성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 예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이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제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함과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됨으로 죄를 면할 수 없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죄를 얼마나 엄중하게 다스리실 것인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22:18,19)"
요한은 또한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긴박성을 말했다(22:7,12,20). 주님은 천사를 통하여 “내가 속히 오리라(22:7)”고 말씀하셨고 또한 오셔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2)”고 말씀하셨다. 여기 속히 오신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속히”라는 의미도 되지만 또한 “홀연히”라는 의미도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고 말했고,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이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라고 말씀하시므로 그 날이 홀연히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처럼 재림에 대한 긴박성을 말씀해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재림을 준비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계시록을 읽는 자들에게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와 이 거룩한 성에 들어오라는 초대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22:11,12,15,17-19). 요한은 이 세상 마지막 때까지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공존할 것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마지막 시간까지 그들을 찾으신다는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돌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노아의 시대를 기억하고 경고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에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지만 때가 되어 방주의 문을 닫으실 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은 노아의 가족들 외에는 어떤 사람도 그 문에 들어 갈 수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도 이렇게 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주님의 초청의 말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22:17)”라는 말씀은 여전히 죄인을 찾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말해 주며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인류에게 마지막 희망이 된다. 누구든지 이 초청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거역한다면 영원한 형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여기 “인봉하지 말라”는 말은 감추지 말고 모두에게 공개하라는 뜻이다. 주님께서 이처럼 이 말씀을 공개하도록 명하신 것은 때가 가까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 공개 된 말씀을 보고 구원으로 초청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한다.
요한 계시록은 철저하게 복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의 말씀이 있고, 의로운 삶을 격려하는 말씀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는 소망의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계시록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들어야 하는 열려진 책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이 전해 주는 메시지와 다른 복음서들이 전해 주는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특별히 계시록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하여 더욱 시각적으로 복음을 전해 줌으로 듣는 자들의 마음에 더욱 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의 메시지는 세속의 거센 파도에 밀려 점점 영적으로 무기력해 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을 각성시켜 잃어버린 영성을 다시 회복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