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요한계시록16장 No 3102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218
[ 날짜 :   2019-02-02 오후 6:44:45 ]
요한계시록16장

16:1. “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본장은 일곱 대접 심판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 번째 화에 해당한다(11:14). 요한은 성전으로부터 일곱 천사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고 명하는 큰 음성을 들었다. 이 음성은 하나님의 소리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듣는 자에게 명료하다. 말씀의 내용이 명료할 뿐만 아니라 음성 자체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 말씀이 누구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요한이 자신이 하늘로부터 들은 소리를 “큰 음성”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이다.
일곱째 인을 떼었을 때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등장하였고 그들로부터 일곱 재앙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이 심판은 처음 단위의 심판 즉 인을 뗄 때의 심판보다 강도가 더 높은 것이었다. 천사가 일곱째 나팔을 불 때 일곱 천사가 다시 등장하여 일곱 대접을 쏟음으로 세상의 마지막 심판이 시작 되었다. 물론 이때의 심판은 우주적이었고 죄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도 이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심판 구조는 일곱을 기본 단위로 하고 이 기본 단위의 심판들이 세 번 반복하며 전우주적인 심판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다.
특별히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을 통해 임하는 재앙은 일반적으로 출애굽 이전의 재앙과 관계있는 것으로 본다. 물론 두 재앙은 세부 내용에서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유사하므로 많은 학자들은 이들 두 재앙이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존슨은 두 재앙의 유사성과 다른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두 시리이즈에서 처음의 네 가지는 전통적으로 자연을 나누고 있는, 즉 땅과 바다와 강과 하늘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나팔 재앙은 일부분만이 해를 받았지만 대접 재앙은 우주적이었다. 그러므로 나팔과 대접을 각각 분리된 심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양자 모두 모세 때 애굽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의 유형에서 인용된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 세 재앙은 그 효과가 사회적이고 영적이며, 자연에서 인류로 옮겨지고 있다(Alan F. Johnson, 엑스포지스터 성경연구 주석에서)
16: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첫째 천사가 대접을 쏟았을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악한 독종이 났다. 이것은 모세가 바로 앞에서 행한 여섯 번째 재앙에 해당하는 재앙이다. 이 재앙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구별”이다. 하나님은 이 재앙을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내리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구별하심으로 이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증거 해 주셨다. 우리는 동일한 사실을 모세가 바로 앞에서 행한 기적들 가운데서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바로 앞에서 이적들을 행하실 때 처음에는 애굽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애굽의 술사들의 마술과 바로의 강퍅한 마음이 그 이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재앙을 애굽 사람들에게만 내리심으로 스스로를 구별하셨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들 가운데 자신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셨다(출8:22). 그러므로 하나님은 첫 번째 천사의 재앙을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만 내리심으로 그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나타내 주심으로 그들에게 주시는 회개와 경고의 메시지가 되게 하셨다.
16: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두 번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았다. 그때 바닷물이 피로 변하여 바다 가운데 있던 모든 것이 죽었다. 바다의 재앙은 두 번째 나팔을 불 때에도 임했다. 그 때에는 불붙는 것 같은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서 바다 가운데 생명을 가진 것들 삼분의 일이 죽었다. 그러나 두 번째 천사가 쏟은 대접으로 인한 재앙은 바다의 모든 생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6:4-7. “4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셋째 천사는 강과 물의 근원에 진노의 대접을 쏟았다. 이로 인하여 모든 물이 피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물대신 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마신 피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바로 그 피(진노의 피)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피를 마신 자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었으므로 천사들과 성도들은 이 심판을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했다.
16:8,9. “8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넷째 천사가 대접을 쏟을 때 해가 권세를 받아서 불로 사람을 태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심판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회개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지라도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지라도 그들의 닫힌 마음은 은혜를 은혜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16:10,11. “10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다섯째 천사는 짐승의 보좌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쏟았다. 그때 그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에게 극심한 고통이 임했다. 이 재앙은 “짐승의 보좌”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보좌는 언제나 왕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짐승의 보좌”는 짐승의 왕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짐승의 보좌에 대하여 말한 후 곧이어 “그 나라”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짐승의 보좌”란 짐승이 자신의 왕권을 행사하는 지역이든지 또는 제도 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짐승의 보좌에 진노의 대접을 쏟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노의 대접도(진노의 심판)도 그들을 회개로 인도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심판으로 인한 재앙은 어둠의 영에게 속한 자들의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했다.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놀라운 사실은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 해 주실수록 더욱 완악해 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심판을 통해 주시는 경고의 말씀조차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는 이유가 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실 수 있는 것은 심판뿐이었다. 결국 인류의 종말은 이처럼 완악해진 인간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으로 인하여 오게 될 것이다.
16:12-16. "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여섯째 천사도 특정한 지역에 대접을 쏟았다. 그가 대접을 쏟은 곳은 큰 강 “유브라데”였다. 9장의 여섯째 나팔에서도 이미 언급한 것처럼 유브라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유브라데는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기 전에 살았던 곳으로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곳으로 상징되고 있다. 또한 이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약속해 주실 때 동편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수1:4). 따라서 유브라데는 약속의 땅 경계 밖의 땅으로 사단이 지배하는 곳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섯째 천사를 통하여 이 강물을 말렸다는 것은 이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으로서 인류 가운데 전쟁을 방지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제도나 장치들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에는 그 강이 전쟁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 그 강이 말랐기 때문에 오히려 동방의 왕들로 하여금 전쟁에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여섯째 대접을 쏟았을 때 일어난 또 다른 하나는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와서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한 전쟁에 참여할 것을 말하고 그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았다. 여기 “개구리 같이 더러운 영”이란 “귀신의 영”을 말한다(16:14). “아마겟돈”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갈릴리의 요새 도시 므깃도와 동일시하고 문자 그대로 마지막 날 이 부근에서 군대의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아마겟돈과 므깃도를 동일시하는 것은 번역과 관계된다. 즉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Αρμαγεδδων)”을 흠정역(King James)에서 “아마겟돈”이라고 번역하였고 모펫은 이것을 “하마게돈”이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영어 개역에서는 “하아-마게돈”이라고 했다. 여기 “하아”를 히브리어 “하르(산)”으로 생각하고 “마게돈”을 히브리어 “므깃도” 혹은 “메깃도”와 동일시함으로 아마겟돈과 므깃도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존슨은 그의 주석에서 므깃도는 텔(인공 언덕으로 요한 당시 70피트높이의 언덕이었다고 한다.)이며 언덕이나 산으로 불러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근에서 200회 이상의 전투가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이곳이 종말론적 전쟁의 적절한 상징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하르 므깃도”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해석을 소개했다. 리씨(Rissi)는 이 말이 하르 모에드(집회의 산)에서 유래 된 것으로 보고 이것을 바벨론의 왕이 교만을 품고 “집회의 산” 즉 하나님의 보좌에 오르려고 애쓰는 이사야서14:12-15절과 연결시켰고, 캐어드(Caird)는 마게돈(하르마게돈, 아마겟돈)을 “베다” “공격하다” 또는 “약탈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의 “가다드”와 관련이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러므로 거기에 하르가 붙어서 이것은 “약탈의 산”을 의미하게 되고 또 예레미야의 “멸망의 산”에 대한 요한의 변형일 수 있다. 이처럼 학자들의 소개한 후 그는 “마게돈”을 “군대 또는 무리를 모으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가다드”의 제2의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히브리어에서 동사를 명사로 만드는 간단한 방법은 동사 형태에 접두사 “마”를 붙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게드”는 군대를 모아들이는 장소가 되고 여기에 접미사 “오”가 오면 군대를 모아들이는 그의 장소가 된다. 이렇게 하면 14절 및 16절의 표현, 즉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와 대등한 것이 되며 심판을 위하여 열방을 모으는 예언적인 기대를 암시한다. 어떻든 이 이름은 상징적인 것이며 팔레스타인 안에서나 다른 곳에서나 우리가 지금 동일시할 수 있는 지리적인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 그들을 패배케 하실 종말론적인 대결을 표현한 것이다(존슨, 요한계시록 주석, 엑스포지스터 연구주석에서)
16:17-21. “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았을 때 번개와 뇌성이 있고 큰 지진이 있었다. 이처럼 큰 지진은 지금까지 있었던 적이 없다. 이 지진으로 인하여 성들이 무너졌고 섬과 산들이 사라졌다. 일곱째 대접을 쏟았을 때 임한 또 다른 재앙은 우박이다. 하늘로부터 무게가 한 달란트(34㎏)나 되는 우박이 쏟아져서 이로 인한 피해가 심히 컸다. 요한은 이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16:21)”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했다”는 것은 이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왜곡된 하나님이었다. 인간의 탐욕은 어리석게도 하나님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만족시켜 주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탐욕에 이끌리는 인간은 형통할 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다가 재난을 당하면 마치 모든 재난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원망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탐욕으로 인하여 왜곡된 하나님일 뿐 여전히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함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까지는 어떤 재앙이 그들에게 임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이들은 회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회개를 위하여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요청 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지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탐욕에 이끌리고 있음조차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회개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주께서 권고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도 이들처럼 마음이 완악해 질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인간의 저주란 연약함이나 죄보다는 오히려 회개할 줄 모르는 강퍅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