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요한계시록15장 No 3099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196
[ 날짜 :   2019-01-26 오후 10:55:32 ]
요한계시록15장

요한계시록 15장과 16장은 마지막 있을 심판에 대한 개요와 그 진행을 보여 주고 있다. 15장은 심판에 대한 개요로서 그 심판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에 말해 주고 있으며 16장은 마지막 심판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15:1-4.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15장부터 시작된다. 이 심판은 일곱 천사에 의해 일곱 재앙으로 진행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심판은 회개할 것을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권고를 끝까지 거부한 죄인들의 완고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표현으로 마치 홍해 바다에서 바로의 군대를 심판하신 하나님의 심판과 같은 양상이 될 것이다. 홍해바다는 바로의 군대들에게 영원한 심판을 의미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인에게는 영원한 구원의 표상이 되고 있다.
본문에서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고(15:2)”라는 말은 심판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한 말이다. 우리는 이미 4장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을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4:6)”로 묘사한 것을 보았고 또한 이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본문은 4장의 “수정과 같은”이라는 말을 “불이 섞인”이라는 말로 대체 되었는데 여기 불은 심판을 묘사한다. 그러므로 4장이 거룩하심을 통하여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표현이라면 본문은 심판을 통해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2,3절은 우리로 하여금 홍해 바다를 연상하게 한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15:2,3)” 이것은 마치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이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심판이 “짐승의 수를 이긴 자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이 될 것이며, 짐승과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 될 것이라는 것임을 말해 준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15:3,4)” 홍해를 건너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애굽의 군대로 인한 두려움으로 떨었지만, 바다를 건넌 후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신 구원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 즉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가”에 서 있게 된 자들도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15:5-8.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요한은 이 일 후에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15:5). 그는 열린 문으로부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천사들은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다.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을 때 보좌 앞에 있는 네 생물 중에 하나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담긴 금 대접 일곱을 주었다. 그때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찼기 때문에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을 마치기까지 아무도 그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기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에서 성전은 지성소를 말한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고 또한 하나님만이 그 문을 여실 수 있다. 즉 성소의 휘장을 찢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셨다(마27:51). 그러므로 성전의 문을 여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심판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본문에서 성전을 “증거 장막”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말씀에 따라 공의롭게 행해 질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늘의 성전에 있는 말씀들(율법)을 세상에 선포해 주심으로 공의가 무엇인지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에 따라 세상을 심판하실 때 아무도 그 심판에 대하여 핑계하거나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15:8)”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 되었을 때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하여 아무도 그 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기 연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셨다는 의미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을 범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 아무도 그것을 막거나 방해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의 의미다.
요한계시록에는 세 단원(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심판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심판들은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말해 준다.
첫째 요한계시록을 통해 보여 주신 심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주관자 되신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요한계시록에 계시 된 세 단원의 심판들은 언제나 심판이 시행되기 전 보좌의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보좌에 않으신 이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또한 그 앞에 서 있는 자들이 그 분께 찬송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이 찬송하는 내용은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었다(5장,7장,15장). 본문도 동일한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15:5-8)” 이 말씀은 심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판을 마치기까지 그 심판을 주관하시고 또한 심판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진행시켜 가시는 동안 누구도 그것을 막거나 방해 할 수 없다는 의미로서 하나님만이 심판의 주관자 되심을 말해 주는 말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계시된 심판들은 심판을 통하여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만의 심판으로도 죄인들을 멸하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계속 미루시고 죄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 주시기 위하여 부분적인 심판만을 행하셨다.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심판을 보면 일곱 재앙을 한 단위로 하는 심판이 세 번 거듭되고 있다.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수이다. 그러므로 심판이 단 한번 행해지지 않고 오히려 일곱을 한 단위로 하여 점진적으로 행해졌고 또한 이런 과정이 세 번이나 반복된 것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심판들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행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도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죄인들에게는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완고한 죄인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주실지라도 그 기회조차 멸시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하나님은 바로에게 회개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 그 기회를 멸시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에게 마지막 재앙을 내리실 수밖에 없으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행하시기까지 오래 참으심은 죄인들에 대하여 가지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이 완고하여 회개의 기회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조차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요한계시록이 계시해 주고 있는 심판들은 죄인들에게는 멸망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의미한다. 언급한 것처럼 동일한 홍해 바다였지만 그 바다는 애굽의 군대에게는 멸망의 장(場)이 되었고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장(場)이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고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심판을 합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이 심판들은 모든 사람에게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처음 두 단원에서 심판은 제한적으로 나타났지만 마지막 심판의 범위는 우주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어떤 사람도 이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