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부패의 원인과 회복의 길 No 3399
글쓴이 양인국(yiksh) 조회수 64
[ 날짜 :   2021-12-04 오후 8:35:21 ]
2021. 12. 5. 삿19:1-37.
부패의 원인과 회복의 길

1. 17-18장은 이스라엘의 영적 부패에 대하여 말하였고, 19-21장은 이스라엘의 도덕적 부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내용들을 통하여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고자 하시는 말씀은 “영적으로 부패할 때 반드시 도덕적 부패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지식이 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2. 17-19장까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물들, 즉 미가와 그의 어머니, 미가의 집에 고용된 레위인, 단지파, 첩을 둔 레위인, 레위인의 첩, 그리고 첩의 아버지, 레위인 일행을 유숙시킨 에브라임 사람, 기브온의 불량배 등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 부패가 도덕적 부패를 가져오고 도덕적 부패는 결국 모두를 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가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단지파는 영적 무지로 인한 왜곡된 신앙으로 인하여 우상숭배에 빠졌고, 단지파는 여기에 더하여 폭력으로 형제의 것을 탈취하는 죄까지 범했다. 레위인들 역시 영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부패했다. 미가의 집에 제사장으로 고용된 레위인은 보다 더 안정된 삶을 위하여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탐욕이 이끄는 대로 행하였다. 물론 첩을 둔 레위인과 그의 첩은 도덕적으로 심각한 부패에 빠져 있었다. 왜냐하면 레위인이 첩을 둔다는 것 자체 그리고 여인이 첩이 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 부패이고, 또한 행음하고 집을 나간 첩을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하여 베들레헴까지 찾아간 레위인의 행위는 레위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도덕적 부패이기 때문이다. 또한 베냐민에 속하는 기브온 사람들은 형제 길손에 대하여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불량배들까지 용납하고(삿19장), 그들의 불법에 대하여는 관심도 두지 않고 자기 지파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들의 편을 드는 도덕적으로 무감각 할 정도로 부패했다(20장).

이들 외에도 자기 집을 찾아온 자들을 기쁘게 영접했던 레위인의 장인과 레위인 일행을 유숙하게 해 주었던 기브온에 거류하고 있는 에브라임 사람 노인도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레위인의 장인은 레위인의 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행음하고 집으로 돌아 온 자기 딸을 책망하기 보다는 거두어 주었고 또한 행음한 자기 딸을 다시 집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찾아온 레위인에 대해서도 어떤 책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에 유숙하게 한 기브온에 살고 있는 에브라임의 노인은 불량배들의 횡포에 못 이겨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레위인을 보호하려고 한 행위도 도덕적 무감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한 남자를 보호해 주기 위하여 두 여성을 희생시키고자 한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급한 예들만 보더라도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심각하게 영적으로 부패했고 또한 도덕적으로 부패했는지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을 거룩함으로 인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레위인들도 부패했고 또한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사람들도 부패했다.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은 총체적인 부패함에 빠져 있었다.

17장에서부터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총체적으로 부패한 원인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바르게 인도해 줄 수 있는 영적 지도자의 부재였다. 부패의 사건을 말할 때마다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는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18:1,19:1)”라는 말씀이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여기 언급하고 있는 “왕”이란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말하고 있다. 물론 모세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였지만 또한 정치적인 지도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보다 우선한 것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반드시 형통하게 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도자가 없을 때 사람들은 영적인 관심에서 떠나게 되고 그때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는 피폐해 가는 것이다. 레위기17장부터 21장까지에서 언급된 부패와 관련된 사건들은 모두 이와 같은 사실들을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동일한 사실을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왕이 부패하여 영적 지도력을 상실했을 때 그 시대는 피폐(疲弊)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를 찾는다면 아합과 아하스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우상숭배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을 때 이스라엘은 그들의 그릇된 지도력으로 인하여 우상숭배에 빠졌고 이로 인하여 사랑을 근간으로 한 사회는 탐욕이 근간이 되었고 결국은 힘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하여 힘 있는 자들의 온갖 횡포가 자행되는 사회로 변해 버렸다. 특별히 아합시대에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나봇은 영적 지도력을 잃어버린 시대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부패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반드시 형통함에 이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인도하되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영적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있던 시대는 시간이 더해 갈수록 복된 사회로 세워져갔다.

다시 한 번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졌을 때, 이스라엘의 환경을 보며 모세의 지도로 인하여 그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진 초기 이스라엘의 환경은 절망적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전적으로 바로에게 의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의 명령에 따라서 감당하기 힘든 고역을 감당해야 했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자식까지 버려야 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외적환경뿐만 아니라 내적 환경도 절망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굽에서 4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사는 동안 그들의 삶에서 많은 것이 애굽화 되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정체성조차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총체적인 위기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주심으로 그로부터 영적인 지도를 받도록 해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회복할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자신들이 신뢰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바로를 굴복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또한 불가능하게 생각하고 있던 애굽의 노예됩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은혜도 체험하였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할 때 가능한 일이 된다는 것을 체험했다.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의 군대로부터 구원해 주신 사건과 사람이 생존하기에 어려운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일용할 양식을 더해 주신 하나님의 능하심에 대한 체험이야 말로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해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살았던 사십년을 돌아보면 그들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애굽했지만 모세의 영적 지도로 말미암아 불안전한 것들을 극복해가며 약속의 땅을 향하여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모세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영적 지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지속적으로 영적 지도를 받으며 살 때 우리의 삶은 시간이 더할수록 보다 더 온전함으로 세워질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신 말씀을 정리하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말씀은 “영적으로 부패할 때 반드시 도덕적 부패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나 공동체가 도덕적으로 부패하면 결국은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믿음의 사람로 하여금 개인이나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언제나 영성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영성의 부재는 영적 지도의 부재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은 영적 지도력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보이는 곳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은 언제나 경제, 교육, 문화, 사회 등에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개인이나 사회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부패해 있으면 반드시 도덕적 부패가 따르기 때문이고 도덕적 부패 가운데 빠지면 결국은 넘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중요한 사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 시대를 변화 시킬 수 있는 변화의 주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많은 사람이 더불어 복된 삶을 살고자 수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사회를 보다 더 좋은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제도들을 연구하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는 일과 믿음의 사람들이 하는 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들은 문제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상만 치유할 뿐 근본적인 것을 치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수고로 인하여 현재 나타나고 있는 증상이 완화될지라도 곧바로 다른 증상으로 재발하기 때문에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개인과 공동체가 직면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영적인 부패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영적인 회복에 힘쓴다. 그리고 영적인 부패가 치유되고 영성이 회복되면 그 사회는 근본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와 같은 지식을 알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과 교회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변화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믿음의 사람으로서 개인과 공동체의 변화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를 아끼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나 사회를 진정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무엇보다도 영적인 회복을 위하여 힘쓰기 원한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이 시간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심으로 우리와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해 주시고 마땅히 행할 일을 행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이로 인하여 우리로 인하여 우리의 이웃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 세워지게 해 주옵소서. 아멘